글 에밀리 은진 김 emilie@dfparis.com
2023.11.20

미아&여레의 첫 EP ‘Eutopia’는 ‘앨범’이란 것이 단순히 연주되는 곡들의 집합이 아니라, 청자가 각 곡의 상호연결을 통해 하나의 큰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예술 작품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단순한 청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공간을 인식하게 만드는 이들의 음악은 특히 청자의 인식 안에 내면의 상상을 위한 정서적인 시간이 흐르도록 하며, 다시금 음악적 시간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복잡한 변박이나 기계적 리듬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울림을 허용하는 프레이징은 재즈와 클래식의 규범과 현학적 태도에 갇히지 않고 소리의 본질과 보편적 공감대에 집중하는 두 음악가의 개방된 음악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1. 7AM
앨범 ’Eutopia’ 를 여는 첫번째 트랙 7AM은 3/4의 리듬으로 조심스레 시작하여 청자를 깊은 성찰과 고독한 밤의 여정으로 초대한다. 이 고요한 밤을 관통하는 결의에 찬 멜로디는 새벽녘의 빛을 상기시키며 네 박자의 발라드로 전환된다. 하모니카의 담백한 연주에 어울리는 피아노의 견고한 화성은 작곡가 김효은이 차곡차곡 쌓아 구축하고 있는 세련된 음악세계를 절제된 언어로 드러낸다. 짧지만 힘있는 이 곡은 앨범 전반에 걸친 담백하고 차분한 정서와 음악적 깊이를 예고하는 의미심장한 서주(序奏)가 된다.
2. On the road
산티아고를 연상시키는 목가적 서정곡. 순례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풍경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도자의 내면 여정을 그리고 있다. 서로의 호흡에 익숙한 두 연주자가 선사하는 하모니카와 피아노의 조화는 마치 길을 잘 아는 동반자와 나란히 걸을 때와 같은 든든한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때로는 내밀하고, 때로는 활기찬 선율을 듣는 동안 청자는 깊은 내면을 걷는 여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Forêt d’hiver
맑고 청아한 겨울 숲의 정취를 담은 명상적인 곡으로 불필요한 기교를 배제한 하모니카의 단정한 선율과 피아노의 미니멀리즘이 균형을 이룬다. 무엇보다 두 악기 간의 적절한 역할 분배와 조화는 형식미의 정수를 보여주며 이 듀오를 가벼운 이지리스닝 장르와 확실히 구분짓게 한다. 탄탄한 음악적 구조 위에 쌓아올린 낭만의 정서는 설득력있는 서사를 만들어 마치 한 편의 잘 쓰여진 소설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4. Alone
이 곡은 엄격한 구조 안에 복잡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진정성있게 녹여내 개인의 감정을 보편적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처절한 멜로디로 호소하는 하모니카는 경직된 양식이나 피상적인 이미지에 갇히기 보다는 순간의 감각에 오롯이 집중하며 인생이라는 보편적 비극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브람스적 서정성을 지닌 피아노의 아웃트로(Outro)에서는 화성의 풍부함 뿐만이 아니라 멈춤과 기다림의 시간인 포즈(Pause)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엿볼수 있다.
5. Breeze
두 연주자가 서로를 신뢰하는 듀오의 미덕을 충실히 보여주는 곡으로, 건축가의 설계만큼 정교하게 화성으로 구축된 피아노의 모던한 사운드와 그 위를 유영하는 하모니카의 자유로운 호흡이 적절한 대비를 이룬다. 산과 들을 넘나드는 바람의 움직임처럼 도약이 많고 다이나믹한 멜로디를 한 호흡으로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하모니카의 연주력은 듣는 이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6. Eutopia
앨범의 모든 곡의 테마가 해체, 재구성되어 각각의 독립된 주제들이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재창조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한편의 서사시. 각각의 테마가 미니멀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다른 테마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두 음악가가 구축하는 음악세계의 소우주를 경험하게 한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볼 때 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사운드에 몸을 맡긴다면, 청자는 실제로 어디에 있든지, 이미 ‘실제하는 유토피아’ 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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